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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트럼(Monstrum)
기획: 류소연 주승리 우다민

vol.1 캔디
육일봉(박가인, 최장원, 이민정, 곽은정)

vol.2 방혜린
씨더썬(민경아, 지은진, 박슬기, 우다민)

2022. 1. 5 - 
1. 30

《몬스트럼(Monstrum)》은 한 사람의 이야기와 그것을 투과하는 예술가들의 언어를 통해, 별종이라 불리는 존재들의 우주를 그린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허스토리가 인터뷰하고, 이를 예술가들의 언어올 풀어낸다.  마치 바람이라도 부는 것 같다. 《몬스트럼(Monstrum)》vol.1 캔디에는 ‘육일봉’으로 활동하는 곽은정, 박가인, 이민정, 최장원, 「몬스트럼(Monstrum)」 vol.2 방혜린에는 ‘씨더썬'으로 활동하는 민경아, 박슬기, 우다민, 지은진이 참여하였다.

 

《몬스트럼(Monstrum)》vol.1 캔디

다림은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해온 활동가다. 활동을 하는 동안 ‘캔디’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 다림이 ‘캔디’의 삶을 선택하고 지금의 자신이 되어 오기까지, 그의 세계를 넓혀 준 것은 그가 만난 사람들, 관계들이었다. 특히 서울에 온 뒤 만난 퀴어/페미니스트 친구들은 캔디에게 넓은 세계를 알려 주고, 활동가로 살아오는 데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친구들과 캔디는 돌봄의 공동체고, 이는 그의 가족이기도 하다. 캔디는 이제 다른 성소수자들에게 ‘공동체가 있는 성소수자’를,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한다. 또한 활동가로서 캔디는 끊임없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다른 사람의 삶과 접촉하기를 시도한다. 캔디가 삶을 통해 보여 주는 관계 속의 개인, 타인의 세계에 다가가려는 노력 들을 네 명의 작가가 포착하고 각자의 언어로 말하기를 시도하였다.


박가인은 가부장적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속한 집단인 30대 여성들이 경험하는 모순을 다양한 미디어를 사용해 발화한다. 이번 작업 <2021년형 러브장>에서는 밈 요소가 과장되게 표현된 디지털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프린팅된 티셔츠들은 전시가 끝나고 작가의 친구들에게 전달된다. 박가인이 자신의 친구들에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자신이 속한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문화적 요소를 경유하여 전해진다. 


최장원은 성소수자・HIV 감염인 당사자로써 겪는 세계의 경계선, 안과 밖에 대한 이야기를 입체・설치, 영상을 통해 해왔다. <영생>에서 최장원은 성소수자 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미래를 상상해본다. 배지와 깃발 등 성소수자 운동을 상징하는 ‘프라이드 굿즈’들을 가져와, 그들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편히 잠든 발할라/천국을 그려보았다. 있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초현실적 상상은 역설적으로 지금 여기에서 ‘운동’하는 우리를 호명한다.


이민정은 ‘좋은 작품은 나와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출발한다’는 전제로 다양한 매체와 퍼포먼스를 통해 실험적인 표현에 도전해 왔다. <그냥 감상하면 되잖아>에서 이민정은 전시장을 극장으로 만들어 관객에게 역할극 실험에 참여하기를 제안한다. 전시장을 찾는 다양한 사람들의 고유한 생각과 경험은 무작위로 부여받은 성소수자 정체성과 만나 각각의 고유한 실천과 발견을 도출한다. 이 역할극을 통해 이민정은 타인의 삶을 상상하고 자신의 편견을 마주하는 경험을 함께하자고 관객에게 제안한다.


타인과 관계 맺는 것 자체를 자신의 작업이라 정의하는 곽은정은 이번 전시에서 전시장이라는 공간을 사용해 관객들을 자신의 공간으로 초대하고, 다원적 언어로 질문한다. <짐 덜기>에서 관객이 전시장에 오는 것은 그 자체가 작품에 참여하는 실천이 된다. 가막사리, 도꼬마리 등 풀씨들은 관객들이 모르는 사이 그들의 옷에 딸려간다. 전시장의 풀씨 개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 텐데 이것은 관객들이 덜어간 누군가 - 어쩌면 작가 자신 - 의 삶의 짐이다. 작가는 그렇게 전시장을 찾아준 관객들과 관계 맺는다. <친구 멍>에서 곽은정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시공간으로 들어가 보자고 제안한다. 텐트 안에서 관객은 눕거나 앉아도 되고, 대화를 해도 되고 핸드폰만 들여다봐도 된다. 무엇을 하든 관객의 자유이고, ‘편안할 것’만이 유일한 조건이다. 곽은정이 제안하는 시공간은 관계 그 자체다. 작가의 초대에 따라, 텐트 안에 있는 사람과 함께 무엇을 먹을지 진지하게 고민해주시기 바란다.

 

《몬스트럼(Monstrum)》vol.2 방혜린

대구 출신, K장녀, 예비역, 트위터리안. 이런 키워드들로 자신을 정의하는 혜린은 1989년생 여성으로,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다. 해병대 여군 장교 출신 인권활동가라는 흔치 않은 이력을 갖고 있지만, 혜린은 자신을 규범에 가까운 점이 더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또한 활동가로 사는 것은 몰랐던 세계들을 만나는 경험이라고 말한다. 혜린이 지금의 삶에 이르게 된 과정에도 다른 세계와의 거듭된 접점들이 있었다. 페미니즘 독서모임에 나갈 수 있었던 것, 2016년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있었던 것, 그 모든 것은 우연이었지만, 개인이 역사 속에서 만나게 되는 필연들로 보이기도 한다. 허스토리가 인터뷰한 혜린의 생애 이야기를 동세대 네 명의 여성 작가들이 듣고, 자신의 세계가 깨어지고 다른 세계를 만나는 순간에 공감했다. 그리고 각자 자신과 세계의 규범이 어긋나는 순간들을 포착했다.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이 일그러지는 때, 내가 세계와 불화하게 되는 때는 동시에 나를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때이기도 하다.

 

박슬기는 주로 여성으로서 느껴온 남성중심의 한국사회에 대해 질문하며 그림, 영상 등 시각예술을 기반으로 다양하게 작업한다. <실험자S의 생명체>에서 박슬기는 신적인 존재 ‘실험자 S’가 있는 통제되고 규칙적인 가상 세계를 실험을 위한 도표를 통해 제시한다. 이 세계에서 자연발생한 새로운 생명체 ‘넌(NONE)’은 사라지지 않기 위해 호흡을 참아내며 자신의 정체를 숨긴다. 규칙적인 도형과 영상의 사운드가 유머러스하게 반복되는 와중에 생명체 ‘넌’이 자기 모습을 잃지 않고 존재하려는 노력은 숨가쁘다. 작가는 이 가상 세계와 생명체를 통해, 규칙을 벗어나 ‘자연발생한’ 현실 세계의 존재들에게 접속한다.


민경아는 젠더, 사회, 종교, 윤리 등 계급이 만들어낸 통념과 폭력을 다루며, 회화, 글, 설치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실험을 이어오고 있다. ‘예술 언저리를 맴도는 언타이틀드 청년’이라 자신을 정의하는 민경아의 이번 작품에서는 ‘소속에 의해 부여되는 자격’ 자체가 작품의 조건이 된다. <테라포밍:스크래치 행성>은 소속을 통해서 입주 자격을 부여받는 가상의 행성을 배경으로 한 보드게임으로, 땅따먹기 게임의 틀을 빌려 ‘정상성 놀리기’를 시도한다. 규범에 속해야만 주어지는 몫을 ‘땅따먹기’에 비유하여, ‘정상성’의 허무맹랑함을 조소한다. 가상 행성 스크래치의 정상 규범은 정치성을 담보하는 ‘지구’의 통념적인 사회질서와는 거리가 먼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생명체가 없는, 미개척지인 토지는 참여자가 행성의 ‘정상인’ 타이틀을 따낼 때마다 한 칸씩 테라포밍된다.


주로 회화 매체를 다뤄온 지은진은 페미니스트 활동가이기도 하다. 최근 베를린으로 이주해 이민자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환경에서 민족, 국가 등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각자의 정상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470nm>에서 작가는 서울과 베를린의 한정된 지역에서, 임의로 설정된 동일한 조건 아래 특정 행위를 수행하며 이미지를 포착, 수집한다. ‘3원색의 하나로 스펙트럼의 파장 470nm 부근’이라는 ‘파랑’의 간결한 색채 정의와 실제로 존재하는 파랑의 무수한 이미지들은 대조적이다. 작가가 수집한 파랑의 이미지들은 진실성과 권력에 대한 우화와 함께 나열되는데, 사회적으로 정의된 용어, 지역의 정체성과 거리 등을 넘나들며 질문을 던진다.


일러스트,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우다민은 여성 예술가 연대 기획팀 ‘씨더썬’을 운영한다. 우다민은 <세이렌의 경고>에서 사이렌(siren)의 어원이기도 한 세이렌 신화를 가져온다. 오랫동안 남성을 유혹해 파멸에 이르게 하는 여성의 이미지로 소환돼온 세이렌의 이미지를 차용, 전복하여 관객들에게 각자의 편견을 마주할 수 있는 장치로 제시한다. 세이렌은 유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 경고음을 쏘아냈다. 세 자매는 서로 음정을 맞추며,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꽤나 신중한 방어태세를 취한다. 이러한 세이렌의 경고를 통해 작가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자신의 세상에서 만들어낸 편견과 판단에 대해 질문한다. 작가는 자신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환경인 전쟁과 분단을 생각했다. 실제 전쟁 경보음의 음정으로 녹음된 성악인의 목소리는 이질적인 기계 경보음으로 들리기도 한다. 관객 각자에게 세이렌은 어느 곳이든,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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