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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작가 기획전
소파와 윈도우
참여작가: 김재은, 서혜진, 신상은, 이건희, 최유정, 황윤서

2022.3.23 -
4.17

전시의 제목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소파’와 ‘윈도우’라는 두 단어만으로도 우리는 서로 다른 상상을 펼칠 수 있다. 아늑한 1인용 소파에 걸터앉아 창밖으로 바삐 움직이는 일상을 탐색하거나, 타인과 공유하는 기다란 소파 위에 나를 위치시킬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쓰임을 잃은 채 등받이가 되어버린 소파가 있을 수 있고 이미 산산이 조각나버려서 마구잡이로 빛이 쏟아지는 창문도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인 만큼 내 주변을 둘러싼 관계와 정황을 아주 쉽게 덧그릴 수 있다. 이 전시는 그렇게 막연한 상상을 이어간다. ‘소파와 윈도우’는 ‘나’의 세계이면서 무수히 많은 ‘각자’의 세계다. 쉽게 침범할 수 없고 쉽게 드러내지 않을 개인이라는 공간을 상징한다.

이 전시는 신진 작가를 소개하기 위해 기획되었지만, 이들을 특정 세대로 호명하거나 그들이 나아가야 할 어떤 지향점을 제시하는 자리는 아니다. 앞서 꺼낸 이야기처럼 작가라는 개인이 구축한 저마다의 세계가 어떻게 다를지, 이 낯선 만남이 어떻게 이어질지 고대할 뿐이다. 이곳에 자리한 여섯 명의 작가가 선보일 각자의 세계가 모두에게 활짝 열려있지 않을 수도 있고 무턱대고 들어가기에는 어쩐지 어색한 공기에 머뭇거릴 지도 모른다. 다른 이의 공간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렇게 서먹한 일이다. 아직은 낯설지라도 이 최초의 경험은 이전까지는 공유한 적 없던 방식으로 나눠본 적 없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할 것이다. 전시는 그저 어떻게 놓여있을지 모를 세계를 창 틈 사이를 슬쩍 들여다보기를 제안하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부터 지하 전시실까지 황서윤의 그림이 이어진다. 긴 획이 주저 없이 그어지고 색채는 의도와 우연을 넘나들며 화면 위로 흘러내린다. 분방한 터치와 발랄한 색채가 얼기설기 교차하고 화면 곳곳에는 어딘가 친숙한 모양과 결코 현실의 것일 리가 없는 모양이 몸을 숨기고 눈을 번뜩거린다. 익숙한 것이 낯설어지고 낯선 것이 친숙하게 서로를 침범하고 상상과 상상이 서로를 뒤쫓으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트러뜨린다. 작가가 그려낸 세계는 어디로든 향할 수 있는 문이 되어 목적지 없이 마음껏 발돋움한다. 그 문은 아주 익숙한 사각형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삼각형이, 때로는 동그란 모양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모양 따위는 대수가 아니라는 듯, 작가의 비현실은 때로는 세계 밖으로 걸어 나오기도 한다. 덕분에 온통 뒤섞여 있어 산만한 이 세계는 아늑하지는 못해도 어디에도 붙들리지 않는다.


반대편 윈도우에 크게 자리한 서혜진의 작업은 오랫동안 타다 남은 흔적처럼 이글거린다. 그의 작업은 ‘감정’에서 시작된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샘솟거나 자신을 짓누르는 감정, 주변과의 관계에서 오고 가는 모든 감정이 그림의 재료인 셈이다. 그럼에도 그림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나 사정, 배경에 대한 단서는 거의 주어지지 않고, 흔히 상대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표정이나 비언어적 제스처 역시 절제되어 있다. 대신 붓 터치와 색, 형태를 구성하는 작은 요소들이 감정을 전달하는 가장 긴밀한 수단이 된다. 그래서 이 요소들은 하나하나 떼어 설명할 수 없다. 마치 어떤 감정으로부터 에너지가 발산되듯 하나의 덩어리처럼 꿈틀댄다. 캔버스와 종이가 지닌 고유의 사각 프레임은 마치 이 에너지를 가둔 틀처럼 견고하다. 그 내부에서 개인이라는 존재가 끊임없이 동요하고 일렁인다.


이건희는 단번에 포착하기 어려운 존재를 그린다. 연기처럼 유연하고 유령처럼 희미한 유령 난초와 그 주변을 맴도는 나방, 여러 손이 모여 하나의 불빛을 겨우 피워내고, 어둠과 구분할 수 없는 검은 형체가 눈을 빛낸다. 이들은 선명하게 돌출되지 않고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어슴푸레 떠오른다. 작가는 시야 밖으로 흩어지는 이 찰나의 인상을 캔버스 위에 붙잡아 둔다. 그렇지만 이들의 존재를 확신하고 명쾌하게 정의하기 위해 그려내진 않는다. 온통 흰 벽으로 둘러싸여 선명하게 빛을 받아 드러나는 순간, 이들의 존재는 도리어 더욱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화면에 붙잡힌 인상은 계속해서 들여다본다 한들 더욱 더 알 수 없어진다. 확신할 수 없는 형태로부터 불길한 감각이 엄습할 때에 그 인상은 결코 지울 수 없는 잔상이 되어 우리 주변을 맴돌게 된다.


김재은은 합정지구의 높은 벽면을 작은 단위로 조각냈다. 자잘한 패턴 위에는 부단히 그려낸 그림이 모여 하나의 벽을 이루었다. 그렇지만 그 벽면에서 완결된 이야기나 선명하게 떠오르는 주제를 발견할 수는 없다. 우리는 몇 가지 단서를 쥐고 읽힐 것만 같은 이미지를 마주하면서 골몰할 것이다. ‘그림’이 된 무언가 앞에서 우리는 아주 쉽게 붙들려 버리고는 한다. 작가는 이를 가볍게 뛰어넘어 ‘그림 조각'의 무용한 역할에 몰두한다. 이 그림 조각들은 대체로 웹 어딘가를 의미 없이 표류하는 파편이었다. 작가는 이를 주어다 그린다. 계속해서 그린다. 이미지가 지닌 본래의 서사와 의미는 애초에 박탈되었고 그림은 껍데기가 된다. 네모난 프레임은 마치 우리를 어딘가로 연결시켜주는 창과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잘게 부서진 세계의 파편에 불과해서 어디로도 우리를 이끌지 않는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부터 지하 전시실까지 황서윤의 그림이 이어진다. 긴 획이 주저 없이 그어지고 색채는 의도와 우연을 넘나들며 화면 위로 흘러내린다. 분방한 터치와 발랄한 색채가 얼기설기 교차하고 화면 곳곳에는 어딘가 친숙한 모양과 결코 현실의 것일 리가 없는 모양이 몸을 숨기고 눈을 번뜩거린다. 익숙한 것이 낯설어지고 낯선 것이 친숙하게 서로를 침범하고 상상과 상상이 서로를 뒤쫓으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트러뜨린다. 작가가 그려낸 세계는 어디로든 향할 수 있는 문이 되어 목적지 없이 마음껏 발돋움한다. 그 문은 아주 익숙한 사각형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삼각형이, 때로는 동그란 모양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모양 따위는 대수가 아니라는 듯, 작가의 비현실은 때로는 세계 밖으로 걸어 나오기도 한다. 덕분에 온통 뒤섞여 있어 산만한 이 세계는 아늑하지는 못해도 어디에도 붙들리지 않는다.


_서다솜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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