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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식물원

2023.1.6 - 1.17

바닥식물원 | 바닥에서 만난 다양성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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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보고 다니지 마라"

어느 날 아침 등교길에 바닥만 보고 걷던 나의 등을 찰싹 때리며, 교장선생님이 말했다.

"어깨 쫙 피고 걸어라" 바닥을 보는 그 구부정한 자세 마음에 안 드셨단다.

그날 교장선생님은 훈화 말씀에서도 바닥 보고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똑바로 걸을 것을 지시했다. 불쌍해 보인다며, 자세가 안 좋아진다며.

나는 억울했다. 불쌍해 보인다니? 나는 바닥을 보며 걷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는데. 바닥을 보면, 그 위에 날아와 앉은 낙엽을 보면, 이 근처에 어떤 나무들이 있는지 알 수 있는데. 떨어진 소나무 잎의 갈라진 개수를 보고 스트로브잣나무인지 리기다소나무인지 살펴보는 것도 얼마나 재미있는데, 깃털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호기심이 마구 발동되는데. 이거 직박구리 것인가? 아니면 비둘기? 날갯깃인가 꼬리깃인가? 그러다 운 좋게 지폐 한 장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공짜 떡볶이도 먹을 수 있는데.

‘바닥'을 향한 어른들의 지루하고 일관된 태도는 널리 쓰이는 '바닥'에 관한 표현에서도 드러난다. '내 인생 밑바닥이야" "바닥 찍고 올라옴", "인성 바닥까지 드러냈다" 한결같이 부정적인 표현 일색이라는 것이다. 바닥이라는 공간이 우리 모두가 발 딛고 서 있는 공간임을 잊은 것인지, 다들 바닥에 무관심하고 배타적이며 심지어 적대적인 태도까지 드러내곤 한다. 스마트폰이 발명되고 사람들의 이러한 태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바닥과의 완전한 단절, 그것은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구 생태계와 그 작동원리와의 완전한 단절이기도 했다.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설립한 게릴라식물원 프로젝트가 바로 <바닥 식물원>이다. 바닥 보고 걷기 전문인 자칭 바닥 애호가들이 모여 바닥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그 아름다움을 조명해 잃어버린 바닥과의 연결감을 회복하자는 움직임을 시작했다. 왜 식물원이냐고? 그들이 좋아하는 바닥의 것이라며 주위 온 것들이 전부 식물의 일부였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갖가지 것들을 모아보니 정말 다양한 식물들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 식물원을 차려도 될 정도였다. 원래 잘 살고 있는 식물들을 뿌리지로 뽑아 온실로 데려오는 만행을 저지르지 않아도 되는 가히 Cruelty-Free 식물원이다. "바닥 식물원" 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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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낙엽원

우리는 왜 바닥에 주목하는가?

그것은 바닥이 '쌓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주변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소하고 비밀스런 일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내려앉은 곳이 바닥이다. 때문에 바닥을 관찰하다 보면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알게 된다.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자연주의 작가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David George Haskell)은 일찍이 숲의 바닥 한 뼘을 티베트 불교 전통의 '만다라'에 비유했다. 반복되는 작은 패턴과 대칭, 복잡성과 일관성 사이의 균형을 이루며 퍼져 나가는 한 뼘 크기의 이 작은 모래 원은 우주의 질서, 인생의 경로, 부처의 깨달음을 재현한 것이다. 그는 티베트 불교 승려들이 한뼘 만다라를 통해 우주 전체를 감상하듯, 숲 바닥 한 뼘에 숲의 모든 생태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낙엽이 쌓인 바닥은 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아주 탁월한 장소이다. 그 바닥을 자세히 바라보다 보면 당신은 숲 속의 수많은 생태 이야기들을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얼마나 바라보고 들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지에 따라 그 이야기의 가짓수는 다르겠지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은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02

바닥 열매씨앗원

바닥은 가능성의 무대

바닥에 떨어진 것들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각양각색의 열매나 씨앗들이다. 숲의 퇴적층이 숲의 과거를 짐작케 하고, 갓 떨어진 낙엽들에게서 숲의 현재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이들은 숲의 다가올 미래를 보여준다. 숲의 지붕에 구멍이 뚫리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라나 우뚝 솟은 아름드리 나무가 될 이들이야말로 가장 '의도'를 가지고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다. 숲 바닥은 이들의 가능성이 실현되는 무대와도 같다. 종종 이들은 자신이 어떤 바닥에서 자라날지 선택하기도 한다. 단풍나무 열매처럼 날개 달린 것들은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기도 하고, 다래나 고욤처럼 달콤한 과육을 가져 새나 동물에게 먹혀 더욱 먼 곳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반면 도토리처럼 어디 멀리 가지 않고도 그늘진 숲 바닥에서 경쟁을 이겨내는 것들도 있다. 이들은 어미 나무가 가득 채워 넣어 준 영양분을 바탕으로 튼튼한 내에서 새싹이 되어 기회가 생길 때까지 오래오래 버틸 수 있다.


03

바닥 서식지원

바닥은 그 자체로 서식지이다

우리는 숲이나 습지나 하천 등을 떠올리지만, ‘바닥’eh 수만은 동물들이 서식하는 서식지가 될 수 있다. 표면의 바짝 마른 낙엽을 지붕 삼아, 그 밑의 캄캄하고 습한 세계에는 온갖 동물들이 북적인다. 꼭 돋보기가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겉의 낙엽만 살짝 걷어내면 맨눈으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의 다양성은 정말 놀라운 수준인데, 대형 동물원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든 동물을 합친 것보다 더 독특하고 다양한 생김새를 관찰할 수 있다. 이들은 바닥에서 뒹굴고 기어다니고 꿈틀거리고 몸을 뒤튼다.

이들은 낙엽을 비롯해 바닥에 떨어진 온갖 것들을 소화시키고, 분해하고, 전달하는 생태계의 근간이 되는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무시되어온 존재들이다 숲의 동물을 생각하면 사슴이나 딱따구리를 떠올리는 사람은 있어도 톡토기나 먼지벌레 따위를 떠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래서 바닥은 곧잘 서식지로서의 가치를 완전히 무시당하고 깔끔히 청소되곤 한다. 작은 토양생물들에게 공원과 같은 녹지에서의 바닥청소는 숲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거나 전기톱으로 싸그리 벌목하는 서식지 파괴와도 같은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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