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현동의 기호들
기획 : 최진욱
참여작가 : 박유미, 전혜림, 최정주, 최진욱 / 라오미, 민성홍, 홍은아
1부 2020.5. 8 -
5.30
2부 2020. 6. 4 -
6.26
마치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을 것만 같던 세계의 연결망은 무기력하게 ‘락 다운’되어 버렸다.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구조의 일부가 마비되며 인류는 각자의 공간으로, ‘개인’이라는 단위로 몸을 피하게 되었다. 이러한 동시대의 위기-또는 어떤 경고-는 불안과 우려를 양산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또 다른 미래의 풍경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세계가 거대 담론과 세계화로의 지향으로 만들어진 주류라는 파도였다면, 지금 이 순간은 거대한 파도가 부서지며 주류 밖으로 밀려났던 세계가 드러나는 시점일지도 모른다. 커다란 변동이 예고되는 시점에서 전시 ‘북아현동의 기호들’은 그 바깥의 지형을 밝히는 하나의 기호가 된다. 전시의 제목은 참여작가들을 연결하는 지점인 추계예술대학교가 위치한 ‘북아현동’에 기인한다. 전시는 학연과 지역성을 전면에 드러내며, ‘세계가 통합’되었다는 믿음이 점차 무너지는 오늘에 사사로운 개입을 시도한다.
전시는 총 2부작으로 구성된다. 5월 8일부터 5월 30일까지 진행되는 1부에서는 박유미, 전혜림, 최정주, 최진욱이 참여한다. 박유미의 작품은 작은 구멍을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발견할 수 있는 형태로 제작되어 개인이 세계와 접촉하고 그 촉각적 자각을 포착하는 순간을 은유한다. 전혜림은 작가의 작업을 이루는 소재, 의미, 방법론, 화면을 뒤섞어내며 의미와 이미지가 서로 연결되는 상황을 제시한다. 최정주는 완벽한 화면을 만들기 위한 몇 가지 제한을 두고 그린 <그림 공부>의 과정을 수십 점 선보인다. 최진욱의 <괴물_언어_‘재난 공동체’의 기호들-삼부작>은 화가의 자화상과 거대한 인간처럼 보이는 구강청결제의 그림자, 동작대교 밑에 물고기 산란장에서 뜨개 그물을 손보는 장면이 삼부작으로 나란히 펼쳐진다.
6월 4일부터 6월 26일까지 진행되는 2부에서는 라오미, 민성홍, 홍은아의 작업을 선보인다. 라오미는 특정 장소의 서사와 이미지에 상상을 개입하여 수평적 시간성을 지닌 새로운 서사를 구축한다. 민성홍은 답이 없는 이 세계에 대처하고 스스로의 생존 방식을 탐색해 나가는 과정으로서의 ‘만들기’를 통해 버려진 물건들로 제작한 거대한 회전목마와 세라믹으로 만든 다양한 조류발을 엮어낸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홍은아는 창덕궁, 북한의 해변, 북한의 농촌 풍경을 겹쳐 그린 <흰 0.>을 선보인다. 중첩된 세 이미지는 구체적인 맥락이 사라진 추상적인 ‘공백’으로 거듭나고 현실의 경계를 넘어선다.
전시는 개인이 딛고 선 ‘지역성’이라는 명확한 출발점을 제시하지만, 그로부터 지향해야 하는 거시적인 목표, 이를테면 정치적 담론이나 역사적 당위성과 같은 어떤 도착점을 상정하지 않는다. 대신 미술을 탐색하는 각기 다른 태도와 실험, 그로부터 촉발된 질문과 답들이 각기 뻗어나가다 한 곳에 모여 서로 충돌하고 동시에 뒤엉키는 독자적인 세계를 지향하며 오늘을 그리는 하나의 기호로서 작동한다.
_서다솜 (합정지구 큐레이터)
주관 : 합정지구
시각디자인 : 톱니귀
전시전경촬영 : 홍철기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 창작산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