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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다른 풍경

 

 

형상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이 그림들은 “접힌 시간”의 장면들로 제시되고 있다. 임노식은 이번 전시의 제목을 《접힌 시간》이라 정했고, 대부분 칠흑같이 어두운 풍경이 그 말의 이미지들로 엮인다.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긴 어둠 속 풍경은 수많은 형상들이 중첩돼 어떤 임의의 작은 홈들(porous)을 가진 또 다른 시공을 암시한다. 임노식은 그의 첫 개인전 《안에서 본 풍경》(2016, OCI미술관)에서, 목장을 소재로 울타리 안과 밖의 물리적 경계를 통해 한 개인의 탈중심화된 심리적․사회적 경계에 대한 사유를 시도했었다. 목장 집 아들인 그가, 어린 시절부터 줄곧 집처럼 드나들던 목장에 대한 다중적 경험을 통해 일상의 공간을 인식하는 시각적 위계에 대해 물음을 던졌다. 그것은, 이제 제법 익숙해진, 안과 밖, 빛과 어둠, 폭력과 방어 등 이분법적 차이가 흐려진 혼돈의 틈새에 대한 사유를 따르고 있었다. 이어서 두 번째 개인전인 《접힌 시간》은, 그가 매일 매일 같은 시간에 오갔던 길 위의 풍경과 그때의 경험을 다룬다. 

 

만약 빛을 섬세하게 조율해 놓지 않는다면 <ground_1>(2017)과 <sky_1>,<sky_2>(2017)는 차라리 검은 캔버스거나 혹은 엉겨있는 물감 자국에 가깝다. 하지만 적당한 빛이 캔버스에 파고들었을 때 표면에 드러난 형상은 한 순간 묘한 공간감을 구축한다. 수평으로 마주하고 있는 검은 캔버스의 표면이 사실 내 머리 위로부터 수직으로 무한히 확장되는 공간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접혀 있던 시간적 층위가 드러나면서 그 공간에 주어진 시간성과 그 순간에 대한 몸의 경험을 상상케 한다. 임노식은 도시 공간 속에서 매일 반복되는 자신의 일상적 경험을 통해, 그 반복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차이를 인식하면서 스스로 “시공간적 존재”에 대한 사유에 차츰 몰두해 온 것 같다. 

 

이를테면, 그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집과 작업실을 오가면서 의심할 여지조차 없이 반복되는 도시의 밤 풍경을 봐왔다. 한 가지 종류의 가로수가 즐비하게 늘어서서 장막처럼 머리 위 시야를 덮고, 보도블록 위로 차곡차곡 떨어지는 가로수 그림자가 도시의 밤을 더욱 어둡게 했다. 새벽 2시, 작업실에서 나와 습관처럼 같은 풍경을 보며 걷다 보면 그 찰나의 경험 보다는 반복을 통해 길들여진 공간에 대한 인식에 갇혀 위축되고 무감각한 존재가 돼버리기 쉽다. 그의 말대로 그는 늘 “같은 바닥, 같은 시간, 같은 풍경을 보며” 길을 걸었다. 어느 날, 그 길을 다시 걸으면서 그는 문득 “어제와 다른 바닥, 다른 시간, 다른 풍경”을 인식하게 됐고,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구체적인 시공간 속의 존재와 그때의 구별된 경험을 알아챘다. 

 

<sky_1>,<sky_2>(2017)를 보면, 길 위에 서서 올려다 본 가로수 이파리들의 가장자리가 보이고 그것을 경계로 검은 밤하늘이 평평한 배경을 이룬다. 아니, 다시, 어두운 밤하늘이 아득히 먼 공간적 거리감을 상실한 채 캔버스 표면에까지 바짝 다가와 그것을 에워싼 가로수 이파리들과 완전하게 포개어져, 사실상 형상과 배경의 흔한 위계적 클리셰는 지워지고 두 개의 경계가 맞닥뜨려지는 비위계적 시공간을 암시한다. 어쩌면 그가 《안에서 본 풍경》에 이어서 이번 전시를 통해 유독 밤풍경에 몰두했던 것은, 그 시공간이야말로 가장 현실에 가까운 오늘과 내일 사이에서, 낮과 낮 사이에서, 일련의 혼돈의 힘을 지닌 중간존재(interbeing)로서 사유될 수 있었기 때문일 테다. 

 

그는 매일 밤, 같은 시간, 같은 바닥, 같은 풍경을 거닐면서 서서히 새롭게 몸에 각인되는 감각들을 경험했고, 그것은 마치 접힌 시간들처럼 다중의 시공간이 계속 중첩되다가 불확실한 어느 때에 느닷없이 인식됐다. 임노식은 그러한 자기 자신의 실제적인 몸의 경험과 그것을 통해 끊임없이 재인식되는 지각의 작은 홈들을 포착하려 한다. 그리고 그 경험에 대한 사유는 곧바로 회화에 대한 경험으로 다시 구체화되면서, 대기의 암흑 속에서 형상과 배경이 뒤섞인 밤 풍경은 어느 순간 공간의 질서와 위계가 지워진 회화의 평면 위에서 그 혼돈의 경계를 더욱 실감케 한다.

 

한편 <wall_1-10>(2017)의 경우, 작게 조각난 열 개의 풍경은 보이지 않는 희미한 단서들로 끈질기게 다시 연결되고 그러다가 어둠의 틈새 속에 또다시 고립되기도 한다. 이는 마치 전시의 제목이 시사하는 대로 수많은 절개선을 내포하고 있는 접힌 시간들처럼, 쉽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미 들뢰즈의 리좀적 사유를 통해 인식한 바와 같이) “접기”와 “펴기”의 반복되는 사유를 통해 안과 밖을 절개하여 홈을 낼만한 위력의 잠재적 공간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분열적 시공으로서의 밤 풍경에 대한 깊은 사유는, 그에게 회화의 형식 안에서 공간(감)에 대한 탐구와 유희를 지속시킬만한 강한 동기를 제공한다. 

 

<sky tower>(2017)는 쓰고 남은 자투리 캔버스 천을 버리지 않고 모아서 같은 크기로 자른 뒤, 매일 보았던 밤하늘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그 잔상을 하나씩 그려 차곡차곡 쌓아놓은 것이다. 100여 장의 작은 그림들은, 말 그대로 같은 자리에 켜켜이 쌓여 올라가는 다층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주목해 볼만한 것은,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 투명한 기둥 속에서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부분이 중간층 밖에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림과 그림 사이, 위와 아래 사이, 수직과 수평 사이, 시작과 끝 사이에서 특별한 권한조차 누리지 못하는 중간존재로서의 이 불확정적 형상이야말로, 암흑처럼 규정할 수 없는 밤 풍경에 대한 인식을 대변한다. 

 

임노식은 일상에서 밤의 풍경에 새롭게 조율되어 가는 몸의 감각을 체감했고, 그 경험에 더욱 몰두하여 일련의 그림처럼 어떤 구체적인 것에 다가가려 했다. <screenshot_1>(2017)과 <screenshot_2>(2017)를 보면, 그가 창문에서 바라다본 밤의 특별한 장면들과 꽤 오랜 시간 마주하고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창문에 묻은 뿌연 얼룩, 건너편 건물 지붕을 덮고 있는 낡은 방수천, 건물 외벽 창문의 희미한 불빛들과 혹은 불 꺼진 창문들, 그리고 제 그림자와 뒤엉켜 버린 어둠 속의 나무들… 창문으로 바라본 이 각각의 광경들은, 주기적으로 어떤 시간에 서로 뒤섞여 다중의 공간을 함축하는 접힌 시간으로서의 밤 풍경을 확인시켜준다. 임노식은 바로 그 시공간에 대한 지각의 경험과 사유를 통해, 일상의 풍경에 저항하는, 바로 어제와 다른 풍경을 구축하려 한다. 접힌 시간처럼 혼돈을 품고 있는 이 밤의 풍경들에서는, 현실의 시공간이 더 이상 현실의 그것이 아닌 존재로 다르게 지각된다.

_안소연 (미술비평가)

디자인 : 홍석영

사진 : 이의록

후원 : 서울문화재단

임노식 개인전

접힌 시간 Folded Time

2017.10.13 -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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