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자기 반성과 고백 : 파울이냐 페어냐?
어느 순간부터 옳고 그름에 대한 문제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쭈뼛거렸다. 비정상적 현실에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바로 참이다' 라고 단언했던 나 자신이, 그것들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부끄러웠다. 난 이제 부끄러운 어른이다.
이전까지 불합리와 부조리에 대한 사실을 붓으로 희롱하며 그것들과 마주했다. 세상을 알아가고 현실과 타협하며 내가 온전히 그것들과 경계를 두고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직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다.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은 타자의 방맹이에 부딪혀 ‘딱’하는 파열음을 낸다.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파란 잔디 위를 날아간다. 공교롭게도 공이 떨어지는 지점에 파울 라인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그 곳에 멈춘다. 과연 이 공은 어디에 떨어질까?
난 야구를 많이 좋아한다. 그림을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항상 야구를 본다. 아니 그림을 그리면서 야구를 본다. 아니 야구를 보면서 그림을 그린다. 아마 매일 같이 같은 공간에서 엉덩이를 붙이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선을 긋는 까닭에 드넓은 잔디밭의 움직임이 그리운 모양이다.
야구는 모든 경기가 생중계된다.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이 경기장 안팎과 여러 플랫폼으로 실시간으로 중계를 시청한다. 예전보다 보는 눈이 많아 졌다. 경기 중에 일어나는 경기의 판정 오류는 많은 눈들에 감시되고 회자 된다. 지금은 더 이상 심판의 권위적인 판정에만 의존하고 마냥 수용해야 했던 시대가 아니다.
소수의 판단 오류는 다수의 눈으로 심판 받고 지탄의 대상이 된다. 이제는 앞뒤로 리플레이를 돌려가며 멈추고, 다시재생하고, 확대하고, 느린 그림으로 보여준다. 아주 정확하게, 단 하나의 판단오류도 범하지 않게 모두가 협의하고 합의한다. 비로소 나이스하고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판단이다. 모두가 함께 감시하고 수용한다. 박수를 지르고 환호성이 터진다.
이제 마주하는 대립과 선택의 순간에서 잠시 멈추고 비로소 천천히 그것을 들여다본다. 지금까지 마주쳤던 것도 다시 본다. 보려 하지 않았던 것, 망설였던 것, 판단을 유보했던 것. 불투명하게 보였던 것들 모두. 더 이상 이전의 소심한 조롱은 삼가 한다. 그냥 천천히 본다. 들여다본다. 자세히 본다. 그리고 움직이자.
지금 멈춰 서 있는 저 공이 아직 파울인지, 페어인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유보시킨 그 시간에 서 있을 뿐이다. 파울일 수도, 페어일 수도.
_노승표
디자인 : 이라건
후원 :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노승표 개인전
파울이냐 페어냐? Foul or fair
기획 : 노승표
2016.11.4 -
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