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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현 개인전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기획 : 이진실

2024.2.16 -3.17

박자현은 2007년 경부터 <일상인>,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제목으로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왔다. 대개 20대 또래의 여성들, 친구들, 또는 자신을 그린 이 그림들은 검은 펜으로 한 점 한 점 찍어서 그린 인물화로 매우 극사실주의적이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거나 부동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이들은 대개 검은 액체나 흰 액체를 뒤집어 쓰고 있지만 고요한 표정과 공허한 눈빛을 발산한다. 담배 연기 속에 아른하게 떠 있는 여자의 얼굴도, 속옷만 걸친 채 묘한 표정으로 시선을 받아치는 여자도 모두 20대 여성들의 불안한 삶과 심리적 난항을 대변하는 듯하다. 박자현의 초상화에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때로는 엄마, 자신도 있다. 인물이 바뀌어도 똑같이 반복되는 그림들의 제목처럼 그 인물들, 즉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일상인, 비정규직 노동자, 미술대학 졸업생, 나아가 굴곡진 삶을 살아낸 엄마는 모두 서로 다를 바 없는 유사한 존재들이다. 부산에서 미술대학을 나오고 돈벌이를 위해 서울로 잠시 상경했다가 다시 고향으로 내려간 이십대의 그녀 자신, 달콤한 보상이나 행운이 없어도 매일의 노동으로 삶을 이어가는 친구들과 가족, 한 평짜리 고시원이나 뒷골목 달방에서 사는 이들, 쉬는 시간 건물 뒤편에서 담배를 무는 여성노동자들. 이 얼굴들에서 희미하게 떠오르는 낯빛은 행복과 패기가 아니라 무표정이다. 거기에는 삶의 열정보다 삶에 대한 고뇌, 인내, 어쩌면 냉소가 가라앉아 있다. 이들의 눈빛은 분노나 슬픔보다 무력감과 의연함으로 막을 친 듯하다.

박자현의 그림은 그 피사체가 인물이든, 고양이든, 흙더미든, 닫힌 문이든 초상화의 성격을 담고 있다. 그녀는 2014년 <달방> 프로젝트 이후 철거촌, 재개발 지역, 빈집, 무덤, 폐쇄된 성매매 골목과 같은 장소들을 그려왔고 그 장소들은 삶이 육화된 흔적들로 종이위에 기록되어왔다. 이러한 '신체-공간'성은 초상화에서도, <감만동의 문>(2018) 이후 지속된 성매매 집결지의 그림들 속에서도 나타난다. <일상인> 연작들에서는 갈라지는 균열과 마른 버짐 같은–곰팡이 같기도 하고 부식되어 가는 듯한–피부 표현이 소름끼치게 나타나고, 집결지 그림에서는 판자를 마구 덧댄 뒷골목의 벽면이나 굳게 닫힌 작은 입구들이 썩어가는 유기체처럼 보인다. 박자현이 지난 5년 동안 그려온 백양대로, 우암동, 서동, 미남 과부촌, 완월동, 구포 만세길 등은 부산의 오래된–그렇지만 행정상으로나 외적으로나 잘 드러나지 않는–, 철거되어 가는 성매매 집결지다. 부산은 1900년대 일제가 항구 주변으로 집창촌을 조성한 이후 한국전쟁과 근대화 시기 외국인을 대상으로 번성한 매춘관광의 역사까지 뿌리깊은 지역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욕망이 교환되는 교차로 어디에나 이 뒷골목이 있다. 모두 알다시피, 부산 뿐 아니라 여러 도시 구석구석에 이렇게 아파트 단지로 예술마을로 새롭게 변신하고 청소되는 뒷골목들이 있다. 박자현이 노후되고 철거되는 공간을 주목하고, 이를 연필로 그리기 시작한 출발점은 개발 논리로 쫓겨나는 존재들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이 공간들은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기록의 대상인데, 이는 연민이나 연대, 지지도 아닌 가난하고 불안하고 미래가 없는 길고양이 같은 삶에 대한 담담한 인사다.

그녀는 특히 이 장소들에 들러붙은 여성들의 삶과 끈적한 신체성을 피부를 떠내듯, 상처를 탁본하듯 연필로 꾹꾹 눌러 그린다. 집결지라는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여성착취의 흔적을 기록한다기보다 구질구질하고 모욕적이지만 그 안에서 견뎌내고 삶을 살아낸 언니, 엄마의 얼굴을 기록하는 것이다. 오정남 여사는 시집살이 10년 만에 집을 뛰쳐나와 호텔, 온천장, 꼬지집을 전전하며 남매를 키워냈다. 길순이, 방석집 할매, 꼬지집 언니들이 뒷골목에 이룬 공동체 안에서도 아이들이 자라난다. 작가는 이십대 무렵 작고 밀폐된 공간에 대한 자신의 감각에 주목해왔는데, 마치 자신을 비닐봉지 안에 넣어둔 벌레나 곰팡이 핀 나뭇잎 같다고 여겼다. 그녀는 2010년대 이후 그런 부식의 감각을 파괴되고 부서지는 장소들에서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존재들과 의미를 나누는 창작활동들로 변화 시켜 왔다. 3년 전부터 작가는 해리장애를 앓는 오정남 여사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잊혀져 가는 삶을 기록한다. 작가는 색도, 부감도 없는 그림들로 비가시적인 노동의 공간이면서 비가시적인 폭력의 공간을 기록하며, 이렇게 오그라드는 몸과 기억을 조심스럽게 펼친다. 그리고 그 주름들의 칠흙 같지만 은은하게 빛나는 삶의 일렁임을 기록한다.

 

이진실

작가 소개

박자현은 재개발을 둘러싼 도시환경, 허물어지는 공간과 인체에 관한 작업들을 이어가며 7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2023년 부산현대미술관 <자연에 대한 공상적 시나리오>, 2021년 코로나19 서울 공공미술 <100개의 아이디어>, 2018년 서울대학교 미술관 <여성의 일>, 2017년 부산시립미술관 <욕망의 메트로폴리스>등 다수의 기획전에 초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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