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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개인전

오키나와 판타지

기획 : 서다솜

2018.7.26 -

8.19

 

알과 몸에 대하여 

 

 많은 그림 조각 중에서도 유독 신경이 쓰였던 건 가슴이었다. 널린 가슴 앞에서 며칠을 그냥 생각만 했다. 여성의 몸과 그 주변에 얽힌 잡다한 말과 말, 이미지와 이미지에 뒤엉키다  문득, 2000년대 초반 웹에서 은근하게 떠돌던 ‘톱 여배우 XXX양 알몸 파문’ 따위의 제목을 건 ‘낚시 게시글’이 떠올랐다. ‘알몸’이란 단어에 이끌려 게시물을 클릭하면 말 그대로 ‘알’과 여배우의 얼굴을 합성한 조악한 이미지가 등장한다. 화사하게 웃는 여자 연예인 머리 아래 붙은 매끈한 타원형의 알은 그들의 몸이 아니면서도 몸으로 통한다.

 

 말장난을 떠나서도, 여성의 몸이 둥그런 형태와 결합되는 예는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여성을 특정 짓는 신체 부위는 주로 둥그렇고 풍만한 형태의 사물에 은유된다. 이러한 은유는 형태의 유사성을 따지는 비유를 넘어서, 여성의 형태와 성질을 재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여성의 몸은 유려한 곡선과 동그랗고 풍만한 형태를 통해 가치가 매겨지며, 그러한 단어로 치장한 여성이야말로 ‘여성성’을 인정받는다. 이처럼 ‘동그라미’로서의 여성은 모나지 않고 반듯하여 누군가를 위협하지 않으며 해칠 수도 없다. 오히려 무엇이든 품을 수 있는 자애로운 품이며, 넣을 수 있는 빈 구멍이다. 

 

 그러나 이곳의 가슴은 ‘발사’한다. 미사일 형태로 솟아난 가슴을 손에 쥐고, 그리고 ‘발사’라고 말한다. 김민희가 그려낸 가슴은 ‘많은 가슴들’은 둥글고 풍만한 형태를 바라보는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몸일 뿐이라는 걸 증명하듯 오히려 과시한다, 자신의 가슴을 감싸 쥐고, 스스로 꺼내 보여준다. 이 조신하지 못한 가슴에는 ‘꼭지’가 중심이 된다. 둥근 젖가슴 위에 은밀하게 피어났어야 할 ‘꼭지’들은 뭉개지고 번지고, 눌려있기도 한다. 줄줄 흐르며, 동시에 돌출한다. 둥그렇고 매끈한 가슴 위에 수줍게 피어났어야 할 꼭지는 미끈한 ‘알몸’을 깨고 나온다. 

 

 김민희의 개인전 《오키나와 판타지》는 여성을 둘러싼 아주 흔한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여기에 부합하지 못하고 떠도는 자신의 상상을 기꺼이 펼쳐낸다. ‘오키나와 판타지’라는 전시 제목은 작가가 오키나와를 여행하고 나서 그린 여러 점의 풍경 연작에서 착안하였다. 그림 속의 오키나와는 작가가 실제로 체험했던 낭만적인 이국의 장소이면서 음란한 상상을 촉발시키는 망상의 공간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도 몇 점의 풍경화가 소개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풍경 안에는 오키나와를 지시하는 구체적인 흔적은 없다. 전시에서 ‘오키나와’라는 말은 특정한 공간을 환기시키기보다는 막연한 감각(뜨거운, 이국적인, 정열적인 등)을 상기시킬 뿐이며, 형형색색이 뒤엉킨 풍경화는 음란한 상상과 은유를 덧칠한 ‘상상-림想像-林’인 셈이다. 

 

 작가가 빽빽한 수풀이나 커튼이 쳐진 창문 사이로 무엇을 보았고 어떤 상상을 덧칠하였을 지에 대한 ‘상상’은 관객에게 몫이 된다. 관객은 은밀한 ‘상상-림’ 주변에 자리 잡은 아주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대상과 형태, 상징을 통해서 작가의 ‘판타지’를 감지한다. 화면 가득 담긴 동그란 가슴들, 물감이 짙게 발려 도드라지는 꼭지들, 과도의 매끈한 손잡이, 색감과 형태가 도드라지는 섹스토이, 연포탕에서 익어가는 낙지, ‘열린 조개’, 솟구치는 분수와 내리치는 핑크빛 폭포까지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이 그려진 이미지에서 분명한 성적 은유를 떠올릴 수 있다. 작가는 그려진 대상들은 보여주고 싶은 대상만 크게 확대하거나, 형태감을 보다 과장하거나, 노골적인 언어유희를 통해 ‘무엇을 가지고 놀고자’ 하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이처럼 ‘끈적끈적하고 축축한’ 은유와 농담은 동그란 형태로 일반화되는 여성의 몸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몸이나 성에 대한 보편적인 음담패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음담패설이 주로 여성의 몸을 재단하려는 지배적인 입장에서의 희롱처럼 발화되었다면, 김민희의 드로잉은 여성-작가에 의해, 여성 스스로의 성적 욕망과 상상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여성의 ‘판타지’를 펼치려는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선입견을 모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선입견 자체를 마주서서 대치하며, 남성에게 전유되었던 발화자의 자리를 꿰차고 권력처럼 작동하던 성적 쾌락과 유희를 스스로 쥐고 흔들고자 한다.  

 

 번뜩이는 이미지는 칼날처럼 외부를 향하면서 동시에 자신(여성)을 둘러싸는 단단한 위계를 깨뜨린다. 여성에게 달라붙던 평가와 시선들은 깨어진 틈새로 새어나와 합정지구의 지하 갤러리에 깊은 웅덩이를 이룬다. 그곳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물 위에서 나른하게 움직이는 어떤 몸이 있으며 그 주변에는 누군가를 둘러싼 말과 편견이 떠다닌다. 김민희가 서술한 에세이에 적힌 모든 시선은 그저 허구이거나 전설처럼 떠도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의 삶을 재단하며, 분명하게 각인된다. 누군가는 그 안에서 갈팡질팡하며 반복되는 삶을 맴돌고 유영한다.

 

 작가는 ‘감히’ 쉽게 뱉어낼 수 없었던 자신의 ‘판타지’를 폭로하며, 누군가들의 지배적인 대상화를 통해 미끈한 ‘알’로 만들어진 여성의 몸과 삶을 깨트리려 한다. 그래서 《오키나와 판타지》는 상상과 은유로 가득차면서도, 분명히 현실을 향해 번뜩인다. 이곳에서 여성은 은밀하게 가려지지 않으며, 반듯하게 고정되지 않는다. 돌출하고 솟아난다. 그렇게 ‘알몸’에서 깨어난 팔다리가 헤엄친다. 

_서다솜 (합정지구 큐레이터)

공간 : 노승표

디자인 : 이산도

후원 :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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