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멸망이 눈앞으로 다가온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누군가 그런 질문을 던졌다. 그 날의 화두는 ‘지구 멸망’이었다. 당장이라도 지구가 망했으면 좋겠다 생각했고, 때로는 내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장 지구가 망할 일은 없으리란 걸 알면서도, 마주하기 싫은 것들을 애써 옆으로 치워놓듯이 우리는 내일이 없는 오늘을 상상했다. 꿈을 설계하는 일이 점차 무의미해지고, 캄캄한 내일을 앞두고 느끼는 무기력함과 두려움은 어찌 손 쓸 수 없다. 이 세계에도, 사회에도, 나에게도, 더 이상 (긍정적인) 변화나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다.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간다. 어쩌면 그저 멸망에 가까워지고만 있는 건 아닌지, 허무함에 시달린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오늘이라도 잘 먹고 잘 놀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내일이 지구 멸망의 날일지라도, 그 마지막조차 오는 지도 모르게.
이 전시는 그런 축제를 상상한다. ‘어떤’ 전야제는 내일이 와야만 알 수 있는 오늘의 밤이다. 다음에 올 ‘어떤 날’은 내일에 두고 오늘을 우선 느끼고 사는 모습을 그려본다.
즉각 반응하지 않으면 사라져버리는 얄팍한 이미지로 오늘을 늘어 놓으며, 나(와 너)를 둘러싼 가변적이고 지속할 수 없는 세계를 직시한다. 어떤 감정에 사로잡혀 들끓다가 이겨내지 못하고 바스러지기도 하고, 종말 앞에서 마지막 생의 의지를 터뜨려보기도 한다. 멸망을 앞둔 어둠을 숭고하고 경건한 풍경으로 그려볼 수도 있고, 멸망의 서늘함이 드리워진 미래를 상상하거나, 태초의 꿈틀거림을 마주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비틀거리는 시선으로 이곳에 함께 뒤엉키지만, 어떤 이에게는 모든 게 듣고 싶지 않은 소음이 될 수도 있겠다.
전시가 그리는 이미지는 ‘디스토피아’나 ‘포스트-아포칼립스’ 장르가 보여주는 끔찍한 종말로 척박해진 삶과 문명이 붕괴된 풍경과는 다르다. 굳이 먼 미래를 상상하지 않아도, 우리 사회에는 이미 무너진 사회상을 암시/증언하는 단어와 사건들이 넘쳐난다. 점점 명확하게 정답을 제시하거나, 문제 상황을 선명하게 파악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전시는 이 세계에 널브러진 ‘망한 잔재’를 마주하며 느끼는 절망, 허무, 한숨 따위를 뒤섞어 보려 한다.
《어떤 전야제》는 ‘지구 멸망’을 꿈꾸거나, ‘지구가 망하고 있어요.’라는 우는 소리도 아니고, ‘지구를 망하게 하겠다.’는 의지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 ‘망해가는 여기’에 대한 반응이자, 도통 알 수 없는 세계에 덧붙여보는 상상이다.
_서다솜
공간디자인 : 노승표, 정덕현
그래픽디자인 : standardtype
티저 영상 : 프리-포스트 전자기
오프닝 공연: 나비
도움 : 권세진, 박은정, 전그륜
후원 : 서울문화재단
어떤 전야제
기획 : 서다솜
참여작가 : 김도희, 김동현, 김두형, 김민채, 김현진,
김희정, 송수빈, 윤지영, 최장원
2017.12.20 -
2018.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