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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마인드

 

 

큰 그림을 그리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간 나는 만화를 그려왔다. 보통 A4 사이즈의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데, 다시 여러개의 칸으로 나누기 때문에 만화의 한 칸은 손바닥 보다 작은 면적이다. 이 작은 면적이 나를 안심시킨다. 손바닥만한 크기이므로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래도 도전은 해보았다. 그동안은 책에 실렸으니 그림이 좀 작아도 되었지만, 이번엔 전시가 아닌가. 나는 머릿속으로 큰 그림을 몇 달동안 그려 보았다. 조형물도 만들어 보고, 설치도 해보고. 머릿속에선 그럴싸했다. 그런데 눈 앞에 만들어 놓으려니 캄캄해졌다. 구현할 방법이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에서 머리로 다시 손으로 가기까지 그 여정은 생각보다 길어서, 손으로 오기 전에 대부분 포기되고 말았다.

전시 날짜가 코 앞으로 다가왔고, 커다란 종이들을 여러장 사왔다. 방바닥에 펼치고 요래요래 그리는데, 아주 똥을 쌌다. 종이를 간신히 채운 내 그림을 보니 가관이었다. 그후 며칠을 우울증에 빠져있었다. 작업을 멈췄다. 어디서 나온 우울인가 들여다보다가, 얼마전 친한 언니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전시를 앞두고 고민이 많아 풀이 죽어 있었다.

 

언니> 뭘 잃을까봐 두려워?

나> 음... 겸손함? 겸손함 같아요...

언니> 겸손? 그럼 ‘겸손함’에 대해 한번 생각해 봐.

 

생각했다. 겸손함을 잃는 것이 두렵다면, 그건 겸손이 아니다. 겸손함 뒤에 있는 우월감을 보았다. 그리고 우월감 뒤에 숨은 그것과 마주했다. 방바닥에 엎드려 색칠공부 하던 꼬마, 미술학원에 가고싶은데 부모님께 말씀 못드리고 아쉬워했던 어린 아이, 어렵사리 만화라는 걸 꿈으로 품게 되었던 열여덟, 예술학교에 3년을 내리 낙방하고 결국 제빵학원으로 향했던 나. 그림에 대한 나의 열등감이었다.

 

손바닥 만한 작은 마음, 열등감. 그런데 만나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하다.

웃음이 난다. 손바닥 안에 바다가 일렁인다.

_심흥아

심흥아 개인전

손바닥 마인드

2015.9.10 -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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