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과 우여곡절>은 현재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성소영의 국내 첫 개인전으로, 그 동안 회화를 비롯해 다양한 추상적 언어로 탐색해온 작가의 조형적 실험들을 선보인다. 박성소영의 초기 작업들은 현대라는 거시적 시간 속에 잠들어있는 문명 혹은 인류의 부재에 대한 향수를 상상적 풍경으로 제시하는 회화들이다. 그러나 이 상상적 풍경에서 출현하는 것은 망각된 전사(前史) 혹은 실현 불가능한 미래의 꿈같은 유토피아적 투사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사적이고도 역사적인 기억이자, 그 속에 각인되어 있는 대립과 공존의 형상이다. 과거, 현재, 미래가 연속적이고 선형적인 것이 아니라, 모순과 뒤얽힘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시간의 중층성을 조형적 탐구의 주제로 삼아온 작가는 이를 평면에서부터 콜라주, 3 차원의 오브제 및 공간 구성으로 확장시켜왔다.
전시장에는 회화적 모티브에서 연결되고 변주되는 조각 오브제뿐 아니라, 레디메이드 사물들이 또 다른 그림처럼 펼쳐진다. 작가는 길가에 버려진 그녀에겐 아름다운 물건들, 이웃들에게 얻은 ‘한물간 것’들을 수집해왔다. 또한 언젠가 필요 하겠거니 ‘미래를 예비해’ 기꺼이 지출했던 포장도 열지 않은 새 물건들부터 차마 버리지 못한 오래된 개인사적인 추억의 것들은 전시장에서 분해되고 재조립되어 새로운 풍경 혹은 정물로 자리한다. 이러한 작가의 수집 행위는 단지 과거의 파편을 그러모으는 것이 아니라, 미래라는 목적을 위한 전 단계이자 수단으로서 현재를 소비하는 현대인들의 습관에 저항하는 것이다. 이제는 생산되지도 않고 플레이어도 없는 카세트 테이프, 망가진 자전거 앞 바퀴, 오랫동안 쓰던 허리띠, 옛 남자친구의 멜빵, 이웃집 할머니에게 얻은 나무 훌라후프, 낡은 피아노의 뚜껑 등은 전혀 다른 기원을 갖는 사물들, 혹은 지금 바로 쉽게 사서 쓰고, 버릴 수 있는 소비재들과 새로운 신체로 재조립된다. 이러한 병치와 재구성을 통해 박성소영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인과성을 벗어난 시간성을 오롯한 삶의 ‘지금’이자 ‘여기’로 재구축하면서 이 시공간에 깃든 순응과 지배, 기억과 망각과 같은 힘의 분투를 조형적 긴장과 상상적 내러티브로 전환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사물들은 추상적이고 등가적인 교환가치로 회수되지 않은 채 ‘잉여’로서 밀려난 것들이고, 사적이지만 집단적인 무의식의 한 차원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전(前)산업시대의 장인적인 오브제와 일상적인 재료들을 병치시키며 시적 구성을 통해 역사적 기억을 동시대적 급진성과 융합해 낸다는 점에서 그녀의 작업은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라는 반(反)모더니즘적 기조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초현실주의의 오브제들이 수공업 시대의 미미한 유물들을 회수해 지배적인 상품교환 체제에 질문을 던지는 제스처였고 아르테 포베라가 신화적이고 신체적인 차원을 들여와 스펙 터클의 동질적 형식에 저항하고자 했다면, 박성소영의 작업은 이질적인 생산 모드와 이력을 지닌 오브제들의 시간차와 긴장을 물질적으로 드러내면서 그 틈새에서 작동하는 비결정적이고 우연한 계기들을 구제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간성을 감각과 조형성의 긴장으로 변환시키는 구성들에서 흩뿌려진 금속성의 색감들은 일종의 ‘박테리아’로서 인류의 역사보다 더 오랫동안 존재해왔으면서도 미래에 도래할 역설적인 영원성을 상징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를 희생시키고 미래의 생존을 담보하기 위한 지지체로서 방주(Ark)라는 형상이 등장한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방벽으로 우리가 쌓아 올리는 구축물이자, 언제나 위협으로 복귀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의 기표다. 작가는 이처럼 우리 각자의 삶을 지탱하는 상반된 시간성, 감각, 이야기들이 서로 당기고 부딪히는 매스, 힘, 밀도를 현재진행형으로 경험해보기를 제안한다.
_ 이진실 (미술비평)
박성소영 개인전
긴장과 우여곡절
2018.12.7 -
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