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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용 개인전

가장의 근심

2024.9.6 - 9.29

관객의 근심

 

의자나 낮은 탁상, 조명, 컵 같은 것이 드물게 보인다. 이것이 사물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하다. 하지만 이 이미지가 오롯하게 의자, 낮은 탁상, 조명, 컵으로 존재하려는 순간, 다른 것이 끼어든다. 전시장에 들어서서 오른편에 부착된 이미지에서 출발해보자. 먼저 나무가 덧대진 의자가 눈에 띈다. 그 위에는 아마도 조명일 것으로 보이는 사물이 누워있고, 그것의 다리는 의자의 다리와 엉겨 있다. 그 위로는 테이프가 칭칭 감겨 있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것이(아마도 무언가의 손잡이가) 돋아나고 있다. 나무 받침 의자 뒤로 다른 의자/탁상이 보이는데, 이건 완전히 가려져 있어 그 형태와 용도를 알 수 없다. 이 의자는 무언가가 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된 것인지 알아내기 어렵다.  

이미지의 원본은 사무엘 스몰즈가 지난 6년 간 제품 판매를 위해 촬영한 사진이다. 김연용은 사무엘 스몰즈의 하드디스크에서 이미 판매되어 오직 데이터로만 남은 이 사물들을 꺼내 온다. 그리고 사물과 사물 사이 투명함, 매끈함, 늘어짐, 울퉁불퉁함과 같은 물성,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는 색, 빛, 그림자, 그것의 용도나 생김새 등을 보며 그 사이 발생하는 언어화하기 어려운 관계성을 발견한다. 작가는 사물을 관찰하며 하나의 사물에 적게는 2-3개, 많게는 4-5개의 사물을 연결한다. 이미지를 층층이 쌓아올리는데, 오려낸 이미지의 외곽선에 입체적인 이미지를 덧대어, 환영적 이미지에 평면적인 이미지의 납작함을 얹는다. 그 사물들의 가장자리, 면과 면을 정교하게 잘라내어 서로 다른 이미지를 이어 붙이기도 한다. 이러한 편집은 사물이 시작하는 지점과 끝나는 지점을 단번에 알 수 없게 만든다. 시점이 어지러워지고 경계선이 흐려진 이 사물은 본래 시작점이 된 사물과  멀어질 뿐만 아니라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그것이 계속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래서 1층에 있는 이것들은 하나의 사물을 숙주삼아 여러 사물이 균처럼 자라나거나, 스스로 주변을 거침없이 삼키며 몸집을 키워 1층 전시장을 점령하려는 것 같다.  

낮에는 자연광으로, 밤에는 파란 형광등으로 밝혀지는 1층과 달리 합정지구 지하 전시장은 커다랗게 서 있는 스탠드 조명과 작은 형광등만이 간신히 켜져 있다. 이 사물이 낯설게 보일 수 있지만 이미 1층에서 보아온 것들인데, 1층에서는 사물이 스스로 자라나고 뻗어 나가며 몸을 부풀려 나갔다면 여기 이것들은 어둠 속에서 작게 옹송그리거나 꼿꼿하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며 관객을 맞는다. 김연용은 스테이트먼트에서 밝힌 “안정과 불안, 행복과 불행, 만족과 불만, 평온과 권태” 둘 사이의 넓은 스펙트럼을 빛의 온도와 그림자의 명도에 따라 쉽게 분위기가 바뀌는 이 사물들을 병치하고 혼용하고 이어 붙이며 포착해내려고 했다. 밝은 1층에서 어둑한 지하 전시장으로 향할 때, 발생하는 이러한 조도의 낙차로 인해 사물 사이 발생하는 정동은 이미지를 넘어 공간에서 발생하는 정동으로 확장된다.

  

김연용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 사물이 그의 손을 벗어나 초과하는 무엇이 되는 이 과정을 모두 기꺼워한다. 제멋대로 작아졌다 커지고, 다른 사물과 결합하고 확장되고 또 분리되는 이 사물이 목적이 없는 것을 넘어 쓸모없음으로 질주하는 것을 두고 본다. 이것에서 보이는 귀여움, 불안함, 불온함 혹은 아무것도 알 수 없어 생기는 의아함과 당혹스러움까지 이 사물이 만들어내는 상상력을 작가는 그저 둔다. 카프카의 단편소설 「가장의 근심」에서 ‘오드라덱’을 걱정하는 가장과 달리 김연용은 여기서 근심하지 않는 듯하다. 누구보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즐기는 듯하다. 사물이자 생물이자 또 이미지이기도 한 이것, 무엇인지 정확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잡아낼 수 없어 계속해서 미끄러지고 탈출하는 이것들을 보며 근심하는 건 오로지 관객뿐이다.

​_전그륜(합정지구 큐레이터)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로 40
40, World Cup-ro, Mapo-gu, Seoul,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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