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안에는 반공구호가 보이고, 빨갱이천지를 개탄하거나 멸공을 외치고 기도하는 이들, 텅 빈 극장 무대 위에서 혼자 웅변을 하고 국민체조를 하는 아저씨, 놀다가 이따금씩 사이렌이 울릴 때 태극기 아래에서 국기에 경례하는 아이들의 영상, 그리고 체포된 간첩의 활동증거물로 제시된 흑백 뉴스영상을 상상해 본다. 한편, 지하공간에서는 독일에서 활동하는 간첩으로 오인되어 곤경을 치룬 이들을 접하게 된다. 전자는 오늘도 한국사회의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광경이거나 그다지 오래 되지 않은 기억의 이미지들이며, 후자는 수십년전 멀리서 벌어진 사건의 회고이자 그것의 재구성이다. 이 일련의 작업들은 한국과 독일, 오늘과 1970년대라는 공간과 시대의 차이 뿐만이 아니라, 아직 냉전 중인 한국사회에 지속되는 반공이념이 낳은 상반된 현상의 구체적 사례들이다. 지상의 작업은 반공사상을 스스로 끌어안거나 그것이 내면화된 이들의 이야기이며, 지하의 작업은 군사정권이 주도한 반공이념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척점에 놓이는 작업들의 공통점 또한 놓칠 수 없다. 사실 간첩으로 오인된 이들과 멸공사상을 전파하는 이들은 반공주의가 파생시킨 결과라는 점에서 서로 대립되면서 연결되기도 한다.
김무영은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작업을 실천한다. 그 만남이란, 반공사상으로 인한 피해자와 반공사상을 전파하려 노력하는 이들과의 실재의 만남을 뜻할 뿐만 아니라, 반공이념이 실체가 될 때 만들어진 공포와 트라우마와의 대면을 뜻한다. 김무영 개인전 《깃발 아래서》의 작업은 바로 반공이념이 가져온 대립된 현상들을 해체함으로써 그 이면의 트라우마를 다시 마주하는 작업이다. 김무영이 천착하는, ‘기록되지 않은 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에 대한 의문은, 타인의 고통을 둘러싼 재현의 불가능성, 반공이념에 여전히 내재하는 폭력에 대한 공포, 그리고 집단적 트라우마의 기억에 깨어나기를 내포한다.
김무영의 작업은 반공이데올로기라는 소재주의에 집착한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다분히 철학적이다. 그의 작업은 북한이나 반공이념을 하나의 소비적 이미지나 기호로 취급하는 일련의 작가들과 먼 거리에 있다. 그는 태극기라는 한 깃발 아래서의 어지러운 상황, 반공이라는 하나의 이념 아래의 혼란이 야기하는 끝없는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싸움을 지양한다. 그는 아직 냉전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인 반공이념의 세력과 진보주의의 대립 사이에서 그 둘의 변증법적 분석과 해체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 예컨데, 반공이념에 얽매이지 않고도 북한이라는 현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북한과 연루된 모든 것을 간첩 또는 ‘종북좌빨’로 결부짓는 사회에서, 반공이념을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김무영은 이러한 난제를 이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풀어가고 있다. 그는 냉전과 북한체제의 위협과 반공이념이라는 거대서사를 다루면서도 그것에 함몰되지 않고, 오히려 만남을 통한 개인의 목소리 듣기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견해를 앞세우기보다는 그가 만난 이들 개인의 목소리를 들음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_문영민의 “만남을 통하여: 반공사상과 트라우마, 그 공포의 해체”에서 발췌함
서문 : 문영민
디자인 : 이아람
진행 : 서다솜
후원 : 서울문화재단
김무영 개인전
깃발 아래서
2017.11.30 -
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