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 시점. 시점.
시점(時點)
사람들이 조명 아래 모여있다.
특별히 주목할 순간은 아니다. 이를테면 주인공이 물러난 자리에 조역들이 둘러서는 순간 같은 것들이다, 그것은. 일상적 노동의 현장이며, 일을 제대로 마쳐야 할 따름이라고 그들은 내심 중얼거릴 것이다. 햇빛이 저물고 있었다. 대기엔 저녁 어스름의 냄새가 퍼졌고, 그들은 각각 야외와 실내에 적당한 조명을 설치했다. 인공 불빛이 그들을 감싸며 그들의 함께 있음을 확인했다.
함께 있다는 것, 그들이 혼자가 아니며 여럿이 떼를 지어 무언가를 도모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필연적으로 진중한 공동체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공동의 목적때문에 대단히 희열하거나 대단히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같은 시공간에서 더불어 작업을 시행하고 있을지라도 그들을 대변하는 것은 직업인으로서의 개개인이다. 이 개인들 사이로 바람이 불고 한숨이 스치고 대화와 침묵이 번갈아 머문다. 불빛이 관통한다. (이것을 ‘둔중한 공동체’라 불러보자.)
사람들이 조명 아래 모여있다. 조명 아래에서 그들의 공간은 일순 어떤 무대처럼 밝혀진다. 그러나 극적인 순간은 아니다. 많은 경우 그들은 리허설을 하거나 무대를 세팅하거나 짐을 옮기거나 개표를 하는 등 일련의 준비 과정에 있다. 그것은 예비된 본 사건이 시작되면 곧 지워지고 말 여분의 시간이다. 그 잉여의 순간이 캔버스 위에 정지 상태로 포박되어 있다. 그 영원한 포박이 도래하지 못한 시간을 갈망하게 한다. 극적인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시점(視點)
이들을 극적인 순간으로부터 유예시키는 것은, 그리하여 영원한 미완의 긴장을 부여하는 것은, 극적 행위의 부재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같이 가늘고 길쭉하게 왜곡되어 구별되지 않는 신체들, 그리고 무엇보다,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진 얼굴들이다.
세상의 표면으로서의 얼굴이 회화의 표면으로부터 지워져 있다. 흐릿한 얼굴과 함께, 사건의 부재 뿐 아니라, 감정의 부재 또한 발생한다. 인물은 행위와 감정 너머에 있다. 인물은 사건과 체험으로부터 풍경으로 향한다.
특히나 이들 인물은 한결같이 롱숏에 종종 부감(high angle)으로 포착되어, 더욱 배경에 밀착되어 보인다. 그들은 견고한 바닥과 벽에, 불안정한 대기의 흐름에, 바람에 흘러드는 후덥지근한 온도에 흡착될 것만 같다. 그들이 이 장소와 시간을, 그 적요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도리어 풍경으로서의 인물들은 바로 그 기이한 적막으로 동요를 양산한다. (브레히트의 어느 싯구를 비틀어 말하자면) 이들 각각의 얼굴과 내장이 녹색으로 물들어갈 때, 거기엔 달과 식물들, 상어와 고래가 함께 한다.
시점(始點)
아직 극적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기다려도 영영 무언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일어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또 무엇일까. 회화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극적인 사건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도, 마음에 담아둘 만한 인물도, 강렬한 감정의 체험도 없는 구상 회화란 무엇인가.
의혹들이 제기된다. 사진적 회화, 이를테면 사진으로부터 도출되거나 사진에 대응하는 회화, 혹은 인상주의의 재연. 이러한 의혹을 기꺼이 수용하면서, 의혹을 의혹으로 되묻지 않으며, 회화의 유구한 역사 끝에서 회화 전부를 뒤엎겠다는 거창한 포부도 없이, 그럼에도 계속되는 회화들이 있다. 시대가 변한 만큼 회화 역시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해버린 시대에도 여전히 회화가 오직 그 순간들을 기록할 때, 무언가 일어나지 않는 채로 어떤 것이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한낱 그림. 그림일 뿐이라는 사실. 무언가 발생할 것만 같지만 결국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순간을 끈질기게 증명함으로써, 바로 그 자리로부터 무언가가 발생하고 있다.
_방혜진(비평가)
디자인 : 스탠다드타입
박진아 개인전
사람들이 조명아래 모여있다
2018.4.13 -
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