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우리는 매일 같이 인터넷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이미지와 기호들에 둘러싸여 있다. 타인의 관심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이 기표들은 끊임없이 조작되고 포워딩되고 전유되며 변형된다. 가늠하기 힘든 진리값을 지닌 채 사실과 거짓의 구분을, 그리고 원본의 존재를 정체 모를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익명성의 ‘짤’들. 가속화되는 통신망의 속도만큼이나 재빨리 욕망의 비등점에 도달한 이 이미지들은 금세 ‘스팸’으로 신속히 폐기된다. 이 디지털 쓰레기더미가 순환하는 포스트-인터넷 환경에서 이제 대중은 당당한 이미지의 생산자가 되었다고 선언할 수 있다. 이 ‘민주화된’ 이미지들은 인스타그램의 과시용 사진이든, 온갖 기행을 일삼는 유투버들의 모습이든 모두 자신의 존재증명을 위한 몸부림이자, 스스로가 리얼리티라고 믿는 거울이미지이다.

이 전시는 이러한 이미지의 잉여와 휘발 속에 깃든 진짜 삶의 재현적 실패, 혹은 재현불가능성을 미술의 언어로 진지하게 탐색하기보다 그 실패를 보란 듯이 비웃고 가지고 노는 인터넷 하위문화의 정서와 언어를 살피고자 한다. N포세대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20대~30대 초반 작가들로 구성된 이 작업들은 하위문화의 코드를 차용하면서 불안한 하위주체의 정서와 삶을 비춘다. 그러나 이들의 작업은 통상의 미술 언어라기보다는 소셜미디어에서 유통되고 재가공되는 놀이 그 자체에 가깝다(또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 이미지들은 청년세대의 빈곤, 여성, 소수자성, 섹슈얼리티, 병리현상에 가까운 한국적 마초성을 조명하지만, 이러한 삶들과 서사들을 비틀고 패러디하는 중첩된 미러링을 감행한다. 말하자면 ‘예술의 정치화’와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헬조선에서 목도하는 불안한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기득권에 대한 비판적 저항보다 그러한 폭력성과 이데올로기가 밑바닥에서 어떻게 마이크로하게 반복되고 전유되는지를 무력하게(때로는 낄낄대며) 보여준다.

본 전시에는 포스트-인터넷 시대 트위터, 유투브 등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하위문화를 적극 생산, 포착, 향유하는 젊은 세대들의 작업들이 소개된다. 특히 소셜미디어에 떠도는 형상/인물들, 언어들을 적극 생산하고 향유하는 세대의 관점을 통해 불안하고 모순적이며 적대와 자조로 가득찬 또 하나의 현실을 들여다본다. 이번 전시의 참여 작가들은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대표하면서 불량하고 쓸모없는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인디 아티스트, 빈곤한 여성 청년세대의 욕망과 섹슈얼리티를 ‘못된 방식으로’ 다루는 만화가, 그리고 아직 본격적으로 미술씬의 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채 자신의 주변적 현실을 작업으로 ‘착취’하는 청년 ‘프레카리아트’ 작가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미시적인 욕망과 충동, 섹슈얼리티, 괴물성, 공격성을 수집하고 재가공한다. 때로는 스스로를 위반의 선상에 놓는 이러한 작업들은 일련의 도박들 같다. 이 작업들은 음모론과 불안, 광기와 폭력, 페미니즘을 둘러싼 말과 행위들을 수집하고 차용함으로써 혐오와 미러링, 패러디와 조롱의 경계를 묻고 트위터와 같이 가속화된 인터넷 환경에서 쏟아지는 이미지와 주체에 관한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나아가 이러한 작업들(혹은 놀이들)은 기존 미학적 조형언어와는 전혀 다른 지각 구조, 감각을 유통시킬 뿐 아니라 소시민적 윤리와 신념 또한 문제시한다.

삐딱함과 위반성, 패러디와 유희 안에 자기진술을 숨겨놓는 이중, 삼중의 ‘거울놀이’는 여기 불러들인 작업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너무나 매끈하게 봉합되는, 공감 가능하고 아름다운 휴머니티의 보편적 가치를 확신케 하는 수많은 미술 재현의 바깥에서 벌이는 이들의 도박이 당신에게 유쾌하게 혹은 불편하게 다가올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스팸에 가까운 이 이미지들, 원본성(진정성), 순수함, 정치적 올바름의 경계를 침해하는 이 놀이에서 유대감을 느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또 그렇지 않다면 왜 인가? 이 질문은 히토 슈타이얼이 지가 베르토프를 인용한 그 질문을 환기시킨다. “동지여, 무엇이 오늘날 그대의 시각적 유대를 형성하는가.”

_이진실

권용만은 ‘밤섬해적단’의 드러머로 활동하면서 인디씬에서 사회에 대한 풍자와 거리낌 없는 위반, 노이즈에 가까운 음악을 만드는 독특한 행보를 보여왔다. <시네마지옥>이라는 가상의 매체를 만들어 B급 영화를 상영하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 그는 이번 전시에서 유투브에 떠도는 쓰레기영상들을 편집한 컴필레이션 영상과 <터미네이터2>를 페미니스트 남성으로 패러디 더빙한 작업(?)을 제시한다.    

 

업체는 김나희, 오천석, 황휘로 구성된 콜렉티브다. 웹 프로젝트, 3D나 VR 영상, 사운드 작업, 퍼포먼스와 같이 다양한 매체로 작업하는 이들은 가상적 리얼리티를 통해 청년 세대들의 자조적인 정서, 생존 방식, 놀이문화 등을 드러낸다. 류성실 작가와 협업한 이번 작업은 비현실적인 관념에 사로잡힌 유투버라는 인물과 서사를 통해 포스트-인터넷 시대의 지각 구조와 부유하는 주체들의 형상을 다각적으로 보여준다. 

 

이자혜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극단적이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고 비트는 만화를 그려왔다. 그녀의 작업은 성적/경제적 빈곤에 처한 여성청년세대의 욕망, 괴물성, 전복적인 섹슈얼리티 등을 육화했다고 주목 받았지만, 2016년 성폭력해시태그에 연루되어 신속하게 폐기되었다. 전시에서는 이 추방된 작품, 금기의 이미지가 된 <미지의 세계>를 비롯해 그 외 작업들에 나타난 유희와 위반의 파편들을 다시 모아본다. 

 

한솔은 경제적 여건이 어렵고 미래가 불투명한 젊은 여성작가의 삶과 분투를 자전적으로 보여주는 작업들을 만들어왔다. 한솔의 작업들은 빈곤과 곤경에 처한 젊은 여성세대들의 주체성을 그들의 언어와 일상을 엮어내는 방식으로 담담하거나 유쾌하게 그리는 한편, 조건만남, 우울증, 자살과 같은 불안한 젊은 여성들의 삶의 일면들을 재구성하고 이를 둘러싼 세대, 성차, 계급 간 이격을 가시화한다. 

디자인 : 이수진

미러의 미러의 미러

기획 : 이진실

​참여작가 : 권용만, 업체eobchae x 류성실, 이자혜, 한솔

2018.5.25 -

6.24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