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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메갈’ 이후 ‘넷페미’라 불리는 새로운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우리’들의‘언어’를 발명/증명하려 애써온 이들은 ‘해시태그’를 통해 각종 운동/문화계 내부의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해 증언/폭로해왔다. 이전 세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전후무후한 sns상의 영향력을 통해 이들은 각자의 거점과 지형을 치열하게형성해나갔다. 누군가는 이를 ‘리부트’라고도 불렀지만 또 누군가는 이들이 고질적인 기억상실증에 시달리고 있다고도표현했다. 그것은 그들이 이전 세대를 경유하지 않고 성급하게 어딘가에 도착하려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혹은 ‘선배’들의역사에 대한 존중과 경고를 요구하는 말일수도 있다. 여성들/페미니즘들의 역사가 언제나 충분치 못하게 기억되고 기록되어왔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이러한 충고는 합당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가장 뜨거웠던 순간은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소각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라진 퍼즐을 맞추기에 골몰하기보다 매번 낯설고 경이로운 장면들과 마주치기 위해열중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어떤 마주침도 처음과 같지 않을 것이다. 현재를 통과한 과거에서만 ‘우리’는 만날 수 있을것이다. 그러므로 본 전시는 단지 과거와 현재의 사이의 단절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동시대의 여성주의/페미니스트/퀴어액티비스트이자 작가로서 이들의 열망과 혼란이 교차하고 충돌하는 장소가 되고자 한다.

 

2000년대 주로 활동한 여성주의 미술 콜렉티브인 ‘입김’은, ‘종묘’라는 남성적(부계중심/가부장/국가) 장소를(정확히는, 종묘시민공원이라는 공적 장소를) 여자들이 감히 ‘점거’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뿌리가 부정당했다고 믿는 이들과법적공방까지 벌여야만 했던 <아방궁 종묘 점거 프로젝트>를 통해 가장 잘 알려져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들의활동에 뒤따르는 불가피한 송사의 기록 뿐만 아니라 당시의 생생하고 희귀한 기록들을 전시한다. 이는 ‘입김’이 지난 세대의  전술을 대표하는 신화 혹은 유물로서 역사화되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니라, 콜렉티브로서의 ‘입김’이 통과해온 격렬한 토쟁과뜨거운 우정의 흔적들을 동시대의 페미니스트들과 공유하기 위함이다. 동시에 이들의 흔적은 행동주의 미술과 페미니즘 운동사이의 흐릿한 경계에 대한 적극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한 개인의 삶의 궤적에서 액티비스트와 작가의 정체성은 어떻게중첩되고 분열하는가? 운동은 어떻게 실패하고 성공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언제 미술이 되고 미술이 아니게 되는가? 본전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제시하기보다 바로 지금 이 같은 경계 위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동시대 여성작가들의 작업을 참조점으로 삼고자 한다. 우지안과 정소영은 2010년대 (‘메갈’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페미니스트액티비즘 그룹인 ‘페미당당’의 멤버로서, 페미니스트 활동가로서의 정체성과 작가 개인으로서의 욕망 사이에서 끊임없이진동하고 있다. 2015년을 전후로 웹상에서 흘러넘치는 여성들의 목소리들을 관찰하고 수집해온 권세정은 페미니즘 운동의역사적인 장면들을 포착하여 이를 비기념비적 방식으로 엮어낸다. 세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따로 또 같이 협업하며 페미니즘‘활동’과 미술 ‘작업’, ‘생업’을 꾸려나가야 하는 각자 몫의 고민들을 나눈다. 그리해서 <Between the Lines>는 경계를한계가 아니라 축복으로, 경계를 소유하는 대신 점거하는 자들에게만 허락된 열정적인 ‘실패’의 장소가 되고자 한다. 근 이십년의 시간차를 둔 ‘우리’는 여기서, 비로소 만나게 될 것이다.





 

  1. 작가소개

 

아그라파 소사이어티

아그라파 소사이어티는 김진주, 이연숙, 이진실로 구성된 기획 & 출판 콜렉티브다. 아그라파(ágrafa)는 ‘문맹의’ 또는 ‘문자 체계가 없는’을 뜻하는스페인어 형용사의 여성형이다. 여기서 이름을 따온 아그라파 소사이어티는 문법 없이도 가능한 쓰기의 사회를 꿈꾸며, 리서치 기반의 프로젝트에주목하여 시각 문화와 동시대 예술에서의 의미심장한 신호를 포착하고자 한다. 시각예술 연구비평 스터디, 세미나, 전시, 그리고 출판 프로젝트 등을진행하며, 웹진 <SEMINAR>를 발간하고 있다. 

 

입김

입김은 1997년 결성된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프로젝트 그룹으로 곽은숙, 김명진, 류준화, 우신희, 윤희수, 정정엽, 제미란, 하인선 8명의 작가로구성되었다. 회화, 애니메이션, 멀티미디어, 디자인, 아트디렉터 등 각기 다른 분야의 작가들로 이뤄진 입김은 여성, 미술을 주제로 한 연구에서 출발해한국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공유된 경험 읽기의 방식으로, 2008년까지 삶과 예술이 관련 맺는 다양한 여성주의 미술실천 활동을 벌였다. <아방궁종묘점거 프로젝트>를 비롯해, <집사람의 집> 기획전, 여성미술캠프, 비나리마을과 입김의 만남 `유쾌한 파종`전, 부산비엔날레 `섬-생존자` 퍼포먼스 및게릴라 걸즈 온 투어와 포스터 공동제작 등의 활동을 했다.

 

권세정

권세정은 예외적인 것들과 마주하고 이를 유연한 형태로 조형화하는 데 관심이 있다. 그 외에 2018년부터 여성을 둘러싼 이미지와말들을 제멋대로 수집하고 나열하는 아카이브 프로젝트 <1/2 커뮤니티>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우지안

 

정소영

그래픽 디자인, 여성주의와 공예를 탐구하는 마녀. 여성단체 페미당당에 속한 활동가이다.

shegochong.cargo.site

아카이브 협찬 : 김명진, 정정엽, 서울특별시 문화본부/서울시립미술관

진행 : 서다솜

디자인 : 정소영

설치 : 김솔이

도움 : 창작그룹 비기자

사진촬영 : 스튜디오 수직수평

주관 : 합정지구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비트윈 더 라인스 Between the Lines

기획 : 아그리파 소사이어티

참여작가 : 입김, 권세정, 우지안, 정소영

2019.11.29 -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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